3주간의 기나긴 휴가가 끝나고 나는 다음날 바로 출근한 반면 Arne는 휴가가 많이 남아있어 일주일 휴가를 더 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출근할 때마다 쿨쿨 자고 있던 Arne가 어찌나 부럽던지. 휴가 후 출근 첫날 Arne를 부러워하면서 일을 하고 돌아오니 Arne가 집 청소도 해놓고 마트 가서 장도 봐오고 내 퇴근 시간에 맞춰서 저녁을 요리하고 있었다.
다음 날은 내가 일찍 퇴근을 해서 ‘집에 거의 다 왔어. 곧 도착할 거야’라고 말하니 ‘헉 오늘 일찍 오네?? 저녁은 아직 안 했는데 지금 바로 준비할게!!’라고 했다. 집에 도착하니 Arne는 요리를 하고 있었고 딱히 도와줄 것도 없대서 대충 앉아있다가 차려준 저녁을 먹었다. 너무 편하고 좋으면서 ‘이래서 남자들이 결혼을 하려고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가 때문에 Arne가 거의 파산해서 내가 돈을 낼 일이 많아졌는데 그래서 약간 외벌이 하면서 한쪽은 돈 벌어오고 한쪽은 집안일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결혼 생활 같아졌다. Arne 입장은 모르겠고 내가 느낀 바로는 나쁘지 않았다. 딱 정해진 시간에만 일하고 퇴근해서 깨끗하게 정리된 집에서 차려주는 밥 먹으면서 편하게 쉬면 얼마나 좋은지. 그런데 한국에서는 아마 결혼을 하게 된다면 아마 내가 집안일을 하고 요리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대체 왜인지 모르겠지만 아내가 차려주는 ‘아침밥’은 꼭 먹고 싶다고 타령하는 남자들. 임신과 육아 휴직에 대해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회사들. 임신이라도 하게 되면 열 달 동안 고생해야 하지만 낳은 건 난데 내 성씨하나 물려주기도 힘든 제도. 나라에선 출산율 떨어진다고 애 낳아라 하지만 현실은 유모차 끌고 버스도 못 탈 정도. (독일은 지하철은 물론 버스도 유모차 끌고 탈 수 있게 잘 되어 있다.) 아직도 애는 엄마가 돌봐야한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 아빠는 조금만 잘해도 다들 우쭈쭈 해주지만 엄마는 하나만 못 해도 ‘맘충’이라며 여기저기서 비난하는 사람들. 이것들은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애를 낳으면 겪을 수도 있는 많은 일들 중 고작 몇 가지에 불과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남성 청년층 취업자의 비중은 연령의 증가에 따라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30대 중반에는 90% 수준에 이르는 반면, 여성 청년층의 취업자 비중은 20대 후반까지 상승세를 유지하나, 이후 점진적으로 하락한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냐. 많은 여자들이 결혼을 하고 애를 낳으면 애를 포기할 순 없으니 직장을 포기한다. 그래서 생겨난 ‘경단녀’. 경단남은 못 들어봐도 경단녀는 많이 들어봤다.
이 모든걸 반대 입장에서 보면 내가 돈을 버는 사람이니까 집안일도 해주고 밥도 차려준다. 열 달 고생해서 임신도 안 하고 출산도 안 하는데 내 성씨 물려주는 건 당연하다. 상대방은 경력도 포기하면서 애 키워주는데 나는 굳이 그럴 필요 없고 커리어 유지하면서 애 키우는 걸 도와만 줘도 칭찬 듣는다. 진짜 부럽다. 여자들은 예민한 취급받으며 나서서 쟁취해야 하는 것들이 남자들에겐 디폴트라니. 나 같아도 내가 남자면 결혼하겠다.
'독일에서 >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기적으로 살까, 착하게 살까 (0) | 2020.03.05 |
---|---|
독일에서 2020년을 맞이하며 (0) | 2020.01.02 |
독일 생활 1년 만에 생리통이 없어졌다. (2) | 2019.05.31 |
벌써 일년 (0) | 2018.11.29 |
성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은 스웨덴 회사의 광고 (2) | 2018.10.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