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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 이야기

독일에서 2020년을 맞이하며

by Hyedy 2020. 1. 2.

한국에선 그 해 마지막 날에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아 뭐 하면서 보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폭죽을 터뜨리며 요란하게 보내는 독일 분위기 탓에 작년의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 Arne와 Reeperbahn에 살 때인데 마지막 날에 우리는 카운트 다운을 하러 항구로 갔었다. 10시 반쯤인데도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우리는 다리 위에 서서 맥주를 먹으며 사람들이 터뜨리는 폭죽들을 구경했다. 춥긴 했지만 나름 운치 있게 새해를 맞이했다. 

 

폭죽이라고 하면 함부르크 시에서 터뜨리는 그런 폭죽을 상상할지도 모르는데 함부르크시에서도 하는지는 모르겠고 여기저기서 집집마다 개인이 사서 터뜨린다. 근데 그 개인으로 터뜨리는 게 작고 귀여운 폭죽이 아닌 어느 단체에서 할 법한 엄청 큰 폭죽이다. 아무렇지 않게 그냥 도로에 놓고 불을 붙이는데 놀이공원에서 하는 것 마냥 너무 큰 폭죽들이 터져서 처음에 보고 깜짝 놀랐다.

 

새해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폭죽에 미치는지 Arne에게 물어보니 폭죽이 귀신들을 쫓는다나 뭐라나..그래도 터뜨려주면 나야 공짜로 불꽃놀이를 보는 거니 재미나게 봤다. 근데 폭죽을 터뜨리는 사람들 중에 가끔 주변에 사람들이 있다는 걸 신경 쓰지 않는 건지 위험하게 사람들 바로 근처에서 터뜨리는 사람들이 있다. 다행히도 우리는 별 다른 피해를 입진 않고 재미나게 불꽃놀이를 보고 집에 왔지만 Arne는 그런 사람들 극혐이라며 다시 항구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싶진 않다고 해서 올해는 집에서 조용히 보내기로 했다. 

 

1월 1일엔 공휴일이라 슈퍼가 아예 문을 닫고 31일엔 낮에는 열지만 엄청 붐빌거라 30일에 31일, 1일에 뭐 먹을지 다 계획을 해서 장을 봐야 했다. 31일에 보통 독일에선 라끌렛을 먹는 것 같던데 Arne는 라끌렛은 집에서 먹으면 냄새나고 익는데 오래 걸린다고 싫다고 한다. 그래도 대충 아무거나 먹기는 싫고 뭔가 특별한걸 먹고 싶대서 Arne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음식인 잡채를 해 먹기로 했다. 30일에는 내가 좋아하는 Flammkuchen을 먹고 31일에는 잡채, 1월 1일에는 닭갈비를 먹기로 하고 장을 봤다.

 

31일 당일 Arne는 정말 운이 안 좋게도 일을 잠깐 해야해서 Lübeck으로 갔고 나는 그냥 쉬면서 보내고 있었다. Arne가 일을 끝내고 온다고 연락이 왔길래 이제 슬슬 저녁 준비를 해볼까 하고 주방에 가서 당면을 찾았는데 당면이 없었다. 당면은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나머지 재료만 슈퍼에서 사 왔는데 당면이 없다니..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면 딱 2인분 남은 중국당면이 있었다. 그거라도 물에 불려놓고 Arne를 기다렸다.

 

 

👨🏼: 나왔어~~!!

👩🏻: 하이~ 근데 슬픈 소식이 있어

👨🏼: ..?

👩🏻: 잡채 있잖아 그거 당면이 없어

👨🏼: OH NOOOOOOOOO 😥

👩🏻: 근데 우리가 먹던 얇은 거 말고 엄청 두꺼운 거 있거든? 이거라도...

👨🏼: 아 뭐야~~ 이거 당연히 괜찮지!! 이거로 그냥 하자!!

 

 

사실 Arne에게 면은 다 똑같다. 우리 집엔 소면, 칼국수 면, 쌀국수 얇은 면, 쌀국수 두꺼운 면, 냉면, 중국 당면, 일반 당면 등등이 있는데 Arne한테는 그냥 다 똑같은 Nudel이다. 그리하여 중국 당면으로 잡채를 만들었는데.. 그냥저냥 먹을만했지만 역시 잡채는 오리지널 당면이 최고다. 그래도 맛있게 먹고 우리는 평소처럼 휴대폰을 하면서 쉬고 있었다. 휴대폰도 하루 종일 했더니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고 지겨워질 때쯤 읽고 있던 책이 생각났다. 한 60% 정도 읽었었는데 할 것도 없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어서 남은 시간 동안 이 책을 다 읽기로 했다.

 

중간중간 조금 졸려서 포기할까 싶다가도 결국 다 읽었다. 사실 내가 다 읽을 수 있을지 확신도 없었고 '새해엔 깔끔하게 새 책을 읽고 싶다' 이런 마음 가짐으로 시작했는데 결국 다 읽었다. 뿌듯! 하루 종일 놀고먹었으면서 이 책을 하나 읽은 것 때문에 뭐라도 해낸 것 마냥 성취감이 들다니 😂

 

책을 다 읽고 나니 시간은 11시 45분. 전부터 폭죽 소리가 하나둘씩 들리기 시작했다. Arne와 나도 Bauhaus에서 산 조그만 막대 불꽃놀이를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도로에는 10대로 보이는 무리들이 도로에서 폭죽을 던지며 놀고 있었다. 폭죽들을 감탄하며 보고 있는 와중에 Arne는 근처에 주차를 해놓은 차에 흠집이라도 생기면 바로 내려갈 태세로 눈에 불을 켜고 보고 있었다. 불꽃놀이를 구경하다 보니 금방 시간이 흘러 벌써 정각이 되었다. 

 

 

새해가 되자마자 우리도 사온 불꽃놀이를 켜며 2020년의 시작을 기념했다. 올해로 독일에서 맞는 두 번째 새해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다니. 포트폴리오 준비할 때 자려고 누워서도 계속 포트폴리오 생각이 나서 잠 못 자던 날들, 워홀을 갈지 말지 고민하며 묻고 다니던 날들, 독일에 와서도 취업 준비하느라 걱정하면서 날들 등등이 떠오르면서 시간이 참 빠르다고 느꼈다. 

 

작년에 정했던 목표는 '취미 생활 갖기'였는데 스케이트 보드도 타고 베이킹도 하고 그림도 그리면서 취미 생활을 하고 있으니 성공했다고 봐도 되려나. 올해의 목표는 내 시간들을 더 가치 있게 쓰고 더 행복해지기다. 작년에는 편하게 살고 싶고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서 흘려보내는 시간들이 많았다. 그냥 이렇게 흘러가는 데로 살면 되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올해는 그 시간들을 더 가치 있는 곳에 쓰고 싶다.

 

작년에는 유독 행복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다. 나의 결정들을 평가하기 위해서 '나는 그래서 지금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시시때때로 던졌다. 그 답이 '별로 행복하지 않다'일 때도 있었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같이 시간을 보낼 때는 항상 즐겁고 행복했다. 그래서 올해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는 작은 욕심이 있고 그들도 나도 같이 더 행복한 해를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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