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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읽고

책 ::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by Hyedy 2020. 6. 26.

제목만 보고 나의 아픔이 어떻게 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책을 골랐다. 하지만 이 책은 개인보다는 사회적으로 어떠한 변화가 있어야 할지 이야기하고 있다. 책의 저자 김승섭 교수는 사회역학을 공부한 자로 데이터를 통해 질병의 사회적·정치적 원인을 밝히는 일을 한다.

 

저자는 질병의 사회적 원인이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지금 확 와 닿는 말이다. 지금 일하는 회사는 재택근무를 장려하고 있어 몇 달째 재택근무를 하고 외출을 최소한으로 하며 질병에 노출될 위험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나와 같은 케이스는 아닐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꼭 출근을 해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심지어 코로나의 영향으로 인해 실직자가 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그래서 더 자주 아프다고 한다. 질병조차도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지 않다니 마음이 착잡하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YES24 

 

 

이 책은 읽고 나서 행복해지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읽으면 읽을수록 숨이 턱턱 막힌다. 하지만 이전에는 사실 그 자체에만 집중했던 사건들을 사회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보아야 할지 알려준다.

 

지난해 4월 11일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처벌조항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왔다. 그래도 이렇게 변화가 생기긴 하는구나 하며 기사를 확인하던 기분이 아직도 기억난다. 저자는 루마니아의 사례를 들어 낙태 금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1966년 루마니아는 급격히 줄어드는 출산율을 높이고자 낙태 금지법을 시행한다. 하지만 그로 인한 출산율 증가는 일시적일 뿐 많은 문제를 초래했다. 합법적인 낙태 시술을 받지 못하게 되니 많은 여성들이 불법 시술을 했고 그로 인해 사망하는 여성이 늘어났다. 그리고 원치 않는 임신이었지만 낙태 시술을 받지 못한 여성들은 낳은 아이들을 방치하거나 시설에 맡겨 고아원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늘었다.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단순히 낙태를 금지하는 식은 너무 1차원적인 발상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왜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낙태 금지법을 시행했던 루마니아는 낙태 금지가 출생률 증가를 위한 해결책이 아님을 깨닫고 1989년 낙태 금지법을 철폐한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가족계획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 정부에서 낙태를 음성적으로 권장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저출생 문제가 대두되면서 낙태는 죄가 되었다. 정부의 인구정책적 목적에 따라서 낙태가 죄가 되기도 하고 권장되기도 하지만 저자는 어디에도 여성의 의사는 없음을 지적한다. 여성에게 왜 낙태를 선택하는지, 왜 자녀를 갖고 싶지 않아 하는지, 왜 결혼을 하지 않으려 하는지를 묻지 않으면 이와 관련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절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외에도 저자는 쌍용자동채 해고노동자, 삼성반도체 직업병,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사망 등 여러 가지 사건에 관한 사회역학의 연구 결과들을 보여준다. 저자의 연구 중 흥미로웠던 한 가지는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 임신한 어머니의 배 속에서의 경험이 성인이 이후의 건강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5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태아 때의 경험으로 인해서 당뇨병에, 심장병에, 고혈압에 걸릴 수도 있다고 한다. 기억도 안나는 시절의 경험이 그 이후 남은 일생에 영향을 끼친다니 신기하다. 긍정적인 영향이면 좋으련만 저자는 여러 가지 질병들만을 말하고 있으니 좀 억울하기도 하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사회적 영향을 절대 받지 않고 생기는 질병은 없는 것 같다. 독일에 사는 지금 나는 어떤 영향을 받고 나중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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