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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 이야기

열등감이 들 때

by Hyedy 2020. 12. 2.

새로운 브랜드 런칭을 위한 디자인 시안 발표가 있었다. 내 디자인과 다른 디자이너의 디자인을 발표했는데 다들 다른 디자이너의 시안이 더 좋다고 말했다. 누가 봐도 다른 디자이너의 디자인을 선택할 거 같은데 굳이 두 시안 모두 계속 진행해보자고 하는 게 너무 마음이 쓰렸다. 이미 안 될 걸 알면서도 계속 진행을 해야 하다니 너무 의욕이 없어진다. 왜 클라이언트가 원했던 것들을 미처 보지 못 했는지 자책하기도 하고 내 스타일이 그들과 맞지 않는 거라며 타협도 해보지만 현실은 다른 이유보다도 내가 다른 디자이너보다 부족했던 거란 걸 알고 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상대방은 10년 넘게 경력이 있는 디자이너고 나는 이제 2년 넘은 디자이너인데 당연히 실력 차이가 나는 거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드는데 꼭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도 들고 머릿속이 아주 복잡하다.

 

며칠 전 영화에서 봤던 5단계의 심리 변화가 생각난다. 이 심리 변화는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5단계(부인-분노-타협-우울-수용)이지만 똑같은 단계를 밟았다. 아닐 거라고 내 디자인의 가치를 못 알아주는 거라며 부인하다가 여러 단계들을 지나서 우울해서 밥 맛도 없었는데 결국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이제야 보인다. 그냥 능력 부족인 거다. 미팅 후 이 짧은 시간에 벌써 5단계를 다 거치다니 신기하다. Arne가 우울해하고 있는 나를 억지로 부엌에 데려다 놓고 밥을 먹으라며 떠밀어서일까. 우울 단계를 그리 오래 거치지 않아 다행이다. 만약 혼자였으면 하루 종일 울면서 우울했을지도 모른다.

 

이 다섯 단계를 모두 거쳤다면 이제 다음으로 나아갈 차례다. 열등감이 자격지심을 부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더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이미 벌어진 일 더 우울해하기보다는 내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 뭘 더 할 수 있을까 고민해볼 테다. 그리고 또 너무 오래 고민하기보다는 그냥 할 거다. 고민만 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 게 남는 거다. 올해가 가기 전에 이루고 싶은 아주 작은 목표를 세웠다. 오늘 겪었던 감정들을 잊지 않고 이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으면 좋겠다.

 

 

📌 이 이야기는 '창피하지 않은 디자인 하기' 로 이어집니다. 

 

창피하지 않은 디자인하기

📌이 글은 '열등감이 들 때' 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열등감이 들 때 새로운 브랜드 런칭을 위한 디자인 시안 발표가 있었다. 내 디자인과 다른 디자이너의 디자인을 발표했는데 다들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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