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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 사는

독일 생활 :: 독일인의 해장 음식

by Hyedy 2020. 1. 28.

한국인인 나는 아침으로 뭐든지 다 먹을 수 있다. 밥부터 시작해서 라면, 삼겹살까지 아침으로 먹으면 먹는 거지 별다른 기준은 없다. 아침부터 삼겹살 파티라니 생각만 해도 기분 좋다. 반면 독일인인 Arne는 굉장히 깐깐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밥도 안되고 라면도 안되고 파스타도 안되고 무조건 계란, 빵, 야채, 과일, Mett(돼지고기 육회), 각종 소스나 스프레드 이 정도만 아침으로 허락된다. 

 

어느 날 내가 술 먹은 다음 날 아침으로 라면이나 계란 국 같은 국물을 먹는 걸 보고 아침부터 어떻게 스프를 먹냐며 Arne는 깜짝 놀랐다. ‘한국에서는 아침부터 밥, 국, 여러 가지 반찬 이렇게 차려먹는 게 전혀 특이한 케이스가 아니다. 그리고 술 마신 다음 날 해장 음식으로 국물 있는 음식을 많이 먹는다’고 하니까 문화 충격을 받은 듯했다. 참나 이게 뭔 충격이라고. 술 먹은 다음 날은 자연스럽게 국물 있는 음식이 땡기지 않나? 

 

Photo by  Manki Kim  on  Unsplash

 

오히려 독일인들은 술 마신 다음 날에 오히려 기름진 음식이나 건조한 음식들을 먹어서 내가 더 충격받았다. 크리스마스 파티 다음 날 다들 숙취에 쩐 모습으로 출근을 했는데 점심시간이 되자 한 명은 숙취가 아직 남아서 햄버거를 먹어야겠다며 나갔다. 아니 숙취로 속이 안 좋을 텐데 어떻게 햄버거를 먹지? 그 친구는 숙취가 있을 때 기름지고 짠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 Arne도 마찬가지로 감자튀김이나 파스타 이런 음식들을 먹는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그 Arne를 바꿔놨다. 나는 숙취가 있을 때까지 잘 마시지도 않고 많이 마셔도 자고 일어나면 숙취는 없는데 Arne는 조금만 마셔도 엄청난 숙취로 다음날 반나절을 침대에서 앓으며 보낸다. 이 날도 어김없이 침대에 누워서 앓고 있었다. 밥도 안 먹고 잔다길래 나는 혼자서 라면인지, 쌀국수인지 국물이 있는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거의 다 만들고 맛있는 냄새가 나자 Arne도 냄새를 맡고 주방에 온 건지 안 먹는다고 해놓고 자기도 먹고 싶단다. 조금 나눠줬는데 국물을 싹 다 먹더니 먹고 나니까 속이 훨씬 낫다고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Arne는 한국식 해장 방식이 너무 만족스러운 나머지 그 날 이후로 술 먹은 다음날 아침으로 국물 있는 요리를 먹기로 정했다. 

 

 

Arne는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며칠 전 나에게 조차 충격적인 요구를 했다. 이 날도 술에 취해서 거의 죽을 듯이 들어왔다. 사실 이날은 Arne가 지하철에서 잠들어 버려가지고 시내에서 30분이면 오는 걸 2시간 걸려서 집에 도착했다. 죽기 직전이었던게 조금은 이해가 간다. 

 

👨🏼: 죽을 것 같아…따뜻한 국물 먹고 싶은데… 일어나서 말고 지금… 

👩🏻: ㅇㅇ 한국에서는 술 먹고 꿀물 먹어. 타 줄까?

👨🏼: 꿀물 말고… 진짜 국물 먹고 싶어…

👩🏻: 그럼 지금 국수 해달라는 거?

👨🏼: 아니…. 국물만

 

Arne는 국을 만들 때 쓰는 한국의 다시다 같은 Vegetable Broth만 넣고 국물을 만들어서 달라고 했다. 라면에서 면은 안 먹고 국물만 먹고 싶다는 건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치킨 스톡이라든지 다시다 가루만 넣고 가짜 국물을 만들어서 마시다니.. Disgusting이라고 내가 쌀국수 육수 만들어 주겠다고 했지만 그냥 Broth 넣어서 가짜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결국 원하는 대로 가짜 스프를 만들어 줬고 Arne는 Yummy Yummy 하면서 잘 마시고 잤다. 일어나서는 진짜 쌀국수를 먹으며 해장 완료. 역시 해장에는 국물 있는 음식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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