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일에서 / 이야기

이기적으로 살까, 착하게 살까

by Hyedy 2020. 3. 5.

4월 말까지 지금 사는 집에서 나가야 해서 요즘 새 집을 알아보는 중이다. 몇 군데 둘러보긴 했지만 영 좋은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러다 화요일에 지금 사는 곳에서 5분 거리의 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방도 바라던 대로 3개에 막 리모델링을 끝낸 집이라 깨끗하고 발코니도 있고 버스 정류장도 바로 앞이라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화장실이 좁긴 했지만 지금 사는 집은 화장실이 쓸데없이 너무 넓어서 차라리 좁은 게 났다고 생각하던 터라 모든 게 완벽했다.

 

집을 보여주는 할머니가 부동산 중개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집주인이고 그 빌딩 전체가 할머니 소유였다. 부동산 중개인이 아니다 보니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는데 거의 30분 동안 이야기했다. 집을 둘러보고 우리가 준 서류를 보더니 할머니가 내가 일하는 곳을 안다고 했다. 회사에서 나온 제품은 알아도 회사 이름은 다들 잘 모르는데 신기했다. 심지어 할머니는 최근에 우리 회사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어본 적도 있었다. 

 

 

Photo by  Derick McKinney  on  Unsplash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다른 보러 온 사람이 있냐고 물어봤다. 우리가 처음이고 목요일과 금요일에 다른 사람들이 보러 온다고 했다. 그래서 그 사람들까지 만나고 나서 토요일 즈음에 이야기해준다고 했다. 할머니도 우리한테 다른 집들 좀 봤냐고 물어봐서 우린 아직 소식 들은 거 없고 다음날(수요일)에 하나 보러 간다고 했다. 우리 둘 다 너무 이 집이 마음에 들고 집주인 할머니도 친절하셔서 당장 계약을 하고 싶었지만 토요일까지 기다리라고 하시니 알았다고 하며 헤어졌다. 

 

다음날 9시까지 집을 보러 가야 했는데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취소하고 싶었다. 사진으로 봤을 때 꼭대기층이라 너무 좁아 보이기도 했고 창문이 작아서 어두웠다. 그래도 우린 선택지가 별로 없으니 갔다. 일찍 도착해서 동네를 둘러보는데 웬걸. 동네가 너무 좋았다. 아기자기하지만 슈퍼도 종류별로 다 있고 작은 마을 같았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카페에서 아침이나 먹을까 하고 카페를 찾았는데 그 카페 건물 제일 꼭대기층이 우리가 볼 집이었다. 너무 좋다. 주말 아침에 1층으로 내려가서 브런치 먹고 오기.. 이 집에 살면 할 수 있다. 일단 위치는 합격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꼭대기층이라 좁고 어둡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집을 보여주기로 한 관리인이 오고 3층 꼭대기 집 문을 열었는데.. 아니.. 사진을 왜 이렇게 못 찍으셨죠..? 집이 너무 좋았다. 사진과는 다르게 엄청 넓고 깨끗했다. 화요일에 본 집이 23평 정도였고 이 집은 조금 더 비싼 가격에 30평이다.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집을 보여준 사람이 중개인도 집주인도 아닌 건물 관리인이라서 딱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집이 마음에 든다고 하니 관리인은 서류를 주며 적혀있는 연락처로 연락해보라고 했다. 우리가 이 집 이때까지 몇 명 보러 왔냐고 물어봤더니 우리가 처음이고 이따가 한 명 더 보러 온다고 했다. 사진을 너무 못 나온 걸 올려서 그런지 연락이 별로 안 왔나 보다. 잘됐다. 이건 운명이야. 

 

보고 나서 Arne에게 바로 중개인한테 연락하라고 하니 집을 보여준 관리자가 중개인은 오전에 바쁘고 오후에 그나마 한가하다고 했다며 오후에 연락하겠다고 했다. 참나.. 오후까지 어떻게 기다리냐고.. 목 빠지게 기다리다가 2시쯤 연락했더니 중개인이 전화를 안 받는다. 

 

이후 3번 더 전화해봤지만 안 받았다. 결국 우리는 메일을 보냈다. 하.. 그럴 거면 이미 오전에 메일을 보냈어도 됐잖아..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진작에 연락했으면 어쩌나, 메일도 늦게 보낸 것 같아 하루 종일 생각 짜증이 났다. 아예 경쟁자가 많은 집은 별 기대도 안 하는데 이 집은 우리만 잘하면 될 확률이 높아서 더 신경 쓰였다. 집 때문에 일에 집중도 못하고 스트레스받다가 퇴근하려고 하는데 Arne한테 전화가 왔다. 

 

 

👱🏻‍♂️: 화요일에 본 집주인 할머니가 우리랑 계약하고 싶대;;; 남편이랑 이야기해봤는데 우리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우리가 계약한다고 하면 목요일, 금요일 약속 다 취소하겠대

 

 

하.. 왜 이런 시련을 갑자기 주세요? 토요일에 연락해주면 정말 딱 좋을뻔했는데 왜..? 할머니는 Arne에게 지금 당장 계약을 할지 말지 확답을 달라고 했다. Arne는 나랑도 이야기해봐야 한다며 할머니 전화를 끊고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화요일 집이랑 계약하기엔 수요일 집이 더 좋고 될 꽤 확률도 높다. 그렇다고 화요일 집을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운 집이다. 만약 수요일 집이 안되면 우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1. 화요일 집 할머니한테 계약하다고 하고 계약 전까지 시간이 있으니 수요일 집이 어떻게 될지 본다. 수요일 집에서 연락이 오면 화요일 집 계약을 안 하면 되는 거고 안 오면 화요일 집과 계약을 한다. 

 

2. 화요일 집 할머니한테 솔직하게 우리가 수요일에 본 집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연락을 기다리고 있으니 할머니도 목요일, 금요일 사람들을 다 만나보고 그래도 우리가 마음에 들면 연락을 달라고 한다. 그리고 수요일 집은 계속 연락을 기다려본다. 

 

 

첫 번째 선택지가 너무 끌렸다. 어차피 한 번 보고 말 사이에 우리가 좋은 집 구하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날 만났던 친절한 할머니가 자꾸 걸려서 우리는 결국 두 번째를 선택했다. 

 

Arne는 솔직하게 말했고 할머니는 알았다고 했다. 이로써 우리가 화요일 집을 얻을 확률은 더 낮아졌다. 그냥 눈 딱 감고 이기적으로 거짓말을 했어야 하나? 그러면 둘 중에 하나는 건지는 건데. 모르겠다. 이기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잘 산다고 하던데 우리는 어떻게 될는지. 얼른 집을 구해서 그만 스트레스받고 싶다. 

 


이후 이야기 👇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더니

이전 이야기 👇 이기적으로 살까, 착하게 살까 4월 말까지 지금 사는 집에서 나가야 해서 요즘 새 집을 알아보는 중이다. 몇 군데 둘러보긴 했지만 영 좋은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러다 화요일에 지금 사는 곳에서..

hyedy.tistory.com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