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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 이야기

모처럼 날씨가 좋은 함부르크 ☀️

by Hyedy 2021. 5. 10.

이번 주 내내 흐리다가 모처럼 주말에 날씨가 좋아졌다. 토요일에는 평소보다 조금 더 따뜻한 정도였는데 일요일은 최고기온이 무려 26도나 되는 여름 날씨였다. 계속 흐리다 모처럼 찾아온 날씨 좋은 날이었기에 집에만 있을 수 없었다. 독일에 온 초창기에는 왜 독일 사람들이 햇빛만 비쳤다 하면 다들 선글라스 쓰고 햇빛 받으러 나가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나도 그들 중 하나가 되었다. 다음 주도 내내 흐리고 비가 올 예정이라니 오늘 더욱더 나가야 했다. 

 

일단 나가기로 결정을 했는데 그렇다면 나가서 뭘 하느냐가 문제다. 원래도 일요일에 상점도 닫고 있는 게 없어서 무료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더 할 게 없어졌다. Arne가 그러면 Alster를 따라 쭉 걸어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집 근처에 Alster가 있는데 주변이 산책로처럼 잘 되어있다. 평소에는 밥 먹고 산책도 할 겸 걷곤 했는데 이번에는 10km 정도까지 조금 멀리 걸어가 보자고 했다. 

 

예전이라면 오래 걷는 건 딱 질색이라고 거절했겠지만 딱히 더 나은 아이디어도 없고 건강해지고 싶은 마음이 예전보다 늘었기에 오케이 했다. 왕복 4시간 정도 되는 거리를 걸을 예정이라서 중간에 먹을 음식을 뭐를 가져갈까 하다가 나는 샌드위치나 과일 같은 걸 생각하고 있었는데 Arne가 오랜만에 김밥을 먹자고 했다. 원래는 유부초밥을 먹자고 했는데 유부가 집에 없어서 김밥으로 결정되었다. 

 

토요일에 이제 장을 보러 가기 전에 쇼핑 리스트를 만드는데 Arne가 자기 좋은 김밥 아이디어가 있다며 자기가 김밥 종류 유튜브 영상 하나를 봤는데 해보고 싶다고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떡갈비 느낌의 김밥이었는데 자기만의 방식으로 하고 싶다나 뭐라나. 고기를 넣은 김밥은 바로 먹으면 상관없지만 나중에 먹을 경우 질겨지고 맛도 떨어져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Arne가 무조건 자기 이거 해보고 싶다고 하길래 알았다고 했다. 질겨져서 맛없을 수도 있다고 하니까 안 질겨진다면서 자기가 잘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장을 봐오더니 뭘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어놓았다. 

 

드디어 일요일. 아침을 뭐 먹을지 얘기하다가 먹을 게 없어서 Arne가 시리얼을 먹자고 했는데 빵을 먹고 싶으니 베이커리 가서 빵을 사 오라고 했다. 내가 매번 다 괜찮다고 대답하니까 Arne가 제발 괜찮다 말고 내가 좋아하는 걸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해서 이번엔 확실히 말해주었다. 사실 시리얼도 상관없고 정말로 아무거나 먹어도 상관없지만 다 좋다고 말하는 대신 Arne가 원하는 대로 한 번 해줬다. 

 

👱🏻‍♂️: 아침 먹을 거 없는데 시리얼 먹을까? 아님 빵 먹을까? 

👩🏻: 빵 먹자

👱🏻‍♂️: 빵? 내가 샤워하고 집 밖에 나가서 빵집 가서 빵을 사 왔으면 좋겠다고?!?! 정말로?!?! 이 아침에?? 

👩🏻: ㅇㅇ!

👱🏻‍♂️: 그랭 그럼 지금 샤워한다!

 

사실 자기가 빵을 먹고 싶었던 게 아닐까? 조금 귀찮았는데 내가 말해준 덕분에 뭔가 빵을 사러 갈 구실이 생긴 거지. Arne는 자기가 빵을 사 올 테니까 나보고 다른 아침을 준비해달라고 했다. 입맛이 별로 없기도 했고 빵에 버터만 발라도 잘 먹기 때문에 싫다고 했다. 그랬더니 자기가 빵도 사 오는데 아침도 해야 하냐고 삐져서 어쩔 수 없이 스크램블드 에그를 해주기로 했다. 

 

Arne 혼자 먹을 텐데 계란을 2개만 할까 하다가 아니야 하나 더 넣자... 하나만 더 넣을까? 하다 보니 4개 넣었다. 집에 마침 토마토도 있고 오이도 있어서 썰어 놨더니 꽤 그럴싸한 아침이 준비되었다. 딱 준비를 끝내니 Arne가 빵을 사 왔다. 먼저 썰어놓은 토마토를 한 입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방울토마토에선 찾아볼 수 없는 토마토의 그 신선한 맛! 토마토를 먹었더니 없던 입맛이 돌아와서 먹지 않을 예정이었던 스크램블드 에그도 먹었다. Arne에게 사실 계란 2개만 넣을까 했다고 하니까 그랬으면 자기 진짜 열 받았을 거라나 뭐라나. Arne는 비빔밥, 짜파게티, 비빔냉면 등등 요리에 항상 계란을 2개씩 넣어먹는 계란에 진심인 사람이니까 그 말도 진심일 거다. 4개 넣길 잘했지. 

 

아침을 먹고 좀 쉬다가 김밥을 만들었다. 싫어하는 재료와 구하기 어려운 재료들을 빼고 나니 계란, 당근, 오이, 고기만 들어가는 심플한 김밥이 되었다. Arne가 전날부터 야심 차게 준비한 고기는 실패했다. 구울 때 태워서 탄맛도 나고 아주 퍽퍽했다. Arne가 미안하다며 다시는 새로운 김밥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했다. 괜찮아~ 먹을만해~ 하며 달래고 대충 나갈 준비를 했다. 마스크를 챙길까 말까 하다가 Arne가 혹시 모르니 마스크를 챙기자고 했다. 

 

 

산책로

날씨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인지 우리처럼 산책하는 사람도 많고 자전거 타는 사람도 많았다. 얼마 만에 맞는 햇살인지. 내가 햇살에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Alster를 따라 걷고 걷고 계속 걸었다. 걷다 보면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릴 때가 있는데 너무 귀여운 대화를 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아들과 아빠 🚲 

 

👶🏻: 이제 우리 어디로 가?

👨🏻‍🦱: 다리 지나서 왼쪽으로 가면 돼

👶🏻: 왼쪽이 뭐야?

👨🏻‍🦱: ... 나와봐. 아빠가 먼저 갈게

 

 

아기를 낳고 키울 맘은 없지만 가끔씩 이런 아기들을 볼 때마다 너무 귀엽긴 하다. 귀여운 부자를 지나쳐 걷고 걷고 또 걷고 2시간 정도 걷고 나니 목표 지점에 도착해서 도시락을 깠다. 

 

떡갈비(?) 김밥

가져온 김밥을 꺼냈다. 예전에 산 실리콘 도시락통은 포크도 들어있어서 이렇게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다. 2시간 정도 걷다가 지쳐 먹는 음식은 뭔가 더 맛있지 않을까 기대를 가지며 김밥을 먹었는데 똑같은 맛이었다. 떡갈비는 퍽퍽했고 김밥은 그저 그랬다. 다음에는 참치 마요 김밥이나 만들기로 했다. 김밥도 먹고 가져온 디저트도 먹었겠다 이제 집으로 걸어갈까 싶었는데..

 

👱🏻‍♂️: 우리.. 지하철 타고 집으로 갈까? 아까 내가 마스크 챙기라고 해서 우리 마스크도 있잖아~

👩🏻: 지하철..? 왜? 너 지하철 타고 싶어?

👱🏻‍♂️: ..응;;

 

그래서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갈 때는 걸어서 2시간 정도 걸렸는데 지하철로는 네 정거장 밖에 되지 않았다. 충격. 확인해보니 거의 이만 보나 걸었다. 평일 내내 걸을걸 몰아서 다 걸었네. 다음 주는 평일 내내 비 온다는데 집에만 있어도 되겠다. 코로나도 사그라들고 얼른 여름이 와서 수영장도 가고 바다도 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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