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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읽고

책 :: 푸투라는 쓰지 마세요, 더글러스 토머스

by Hyedy 2021. 5. 13.

'푸투라는 쓰지 마세요'라는 제목을 본 순간 뭐지? 내가 모르는 뭔가 있나 싶었다. 신기하게도 현재 일하는 회사의 폰트도 푸투라여서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읽어보았다. 제일 궁금했던 왜 푸투라를 쓰지 말라고 하는지는 첫 챕터에서 바로 말한다. 푸투라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폰트다. 그러니 푸투라를 쓰려면 심사숙고해서 제대로 쓰길 바라며 자신이 없으면 아예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더글러스 토머스 저 / 정은주 역

 

생각보다 푸투라는 꽤 오래된 폰트였다. 1920년대가 그 시작이라니 엄청 오래되었다. 디지털로만 써서 몰랐는데 금속 활자로 찍을 때부터 90년 넘게 사랑받은 서체였다. 서체의 기원에 대해서 딱히 관심 가져본 적 없고 뭔가 미국에서 만들어진 폰트일 거라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푸투라의 근원지는 독일이었다. 

 

1924년 독일의 글꼴 디자이너 파울 레너(Paul Renner)는 시대에 어울리는 서체를 만들고자 했다. 레너는 대문자는 고대 로마의 고전적 비례와 기본적 형태, 소문자는 16-17세기 클로드 가라몽과 장 자농이 만든 활자의 비례 적용하면서도 기하 형태로 실험적인 특성을 넣어 푸투라를 만들었다. 전통적인 특성을 가지면서도 실험적인 면모 덕분에 획기적이면서도 실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대중적인 서체가 탄생했다. 

 

파울 레너가 디자인한 Bauer Types의 Futura (이미지 클릭 시 상세 페이지로 이동)

 

 

 

비슷한 시기 독일에서는 서체도 민족 정체성의 문제이자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었다. 독일의 전통주의자들은 독일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블랙 레터만을 서체로 인정했다. 하지만 독일 이외의 다른 유럽은 가독성과 기타 문제로 인해 블랙 레터가 아닌 로만 활자체를 받아들이며 블랙 레터는 신문 혹은 특별 공문에만 쓰이는 서체로 전락했다. 이를 독일 진보주의자들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지만 보수적인 독일의 민족주의자들은 독일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문화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서체 하나에도 굉장히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는 걸 알 수 있다. 

 

Google Blackletter 이미지 검색

 

 

민족주의적 자부심을 제거하고자 그런 특성이 덜한 산세리프체를 쓰자든지, English가 아닌 english로 소문자로 쓰자는 움직임도 있었다. 하지만 이 시도는 Jew를 jew라고 쓰는 것처럼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폄하의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다. 한 잡지는 제목을 다 소문자로 쓰는 획기적인 시도를 했지만 독자들의 반발에 의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고 한다. 

 

1930년대 초반 히틀러가 유세 활동을 할 때도 나치당에서는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블랙 레터를 쓰고 그 반대의 공산당에서는 푸투라를 사용했다. 이후 히틀러는 블랙 레터가 다른 나라의 언어에 잘 안 맞는 등 한계를 깨달았고 민족주의적 색채가 잘 드러나는 블랙 레터를 버릴만한 합당한 이유가 필요했다. 이에 히틀러는 사실 블랙 레터는 유대인들이 쓰던 문자인 게 밝혀졌다고 하며 로만체를 채택했다. 

 

Google Roman font 이미지 검색 

 

 

하지만 사람들은 현대와 진보를 상징하는 Futura의 등장에 열광했고 미국으로까지 퍼져나갔다. 미국에서는 너무 빨리 퍼져나가서 독일에서처럼 민족 정체성의 해방이니 의미를 부여할 틈이 없었다고 한다. Futura의 인기는 독일뿐만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기업들이 Futura를 써서 심지어 너무 많이 사용한다고 불매운동이 일어날 정도였다고 한다. 아래의 브랜드는 로고에 모두 푸투라를 사용했다. 

 

(출처: https://hipfonts.com/futura-typeface/)

 

하지만 여기에 쓰인 Futura가 모두 진짜 Futura는 아닐지도 모른다. Futura가 인기를 얻자 많은 회사에서 비슷한 폰트를 다른 이름을 붙여서 냈다. 이후 카피한 것을 인정하며 Futura의 라이선스를 구매해 카피 폰트 이름도 Futura로 바꾸게 되었다. 그리하여 Adobe Futura, 무슨 무슨 Futura 등 수많은 Futura가 생겨난 것이다. 오픈 소스로 풀린 Futura도 오리지널이 아닌 카피 Futura다. 이 많은 카피 폰트 회사들은 다 Bauer Type에 로열티를 지급하고 있다. Bauer Type은 잘 키운 폰트 하나로 약 100년간 돈을 벌고 있는 셈이다. 

 

프린팅 시절에 만든 폰트가 디지털로 넘어와서 이렇게 잘 쓰이고 있는 걸 보니 너무 신기하다. 현재까지도 전혀 구식이라는 느낌 없이 잘 사용되고 있는 걸 봐서 앞으로도 한동안은 쭉 사랑받지 않을까 한다. 생각보다 Futura는 대단한 서체였다. 

 

 

 

푸투라는 쓰지 마세요

‘푸투라’는 서체의 이름이다. 푸투라’라는 이름이 낯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푸투라 서체를 본 적 없는 현대인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이 책은 ‘푸투라’가 기술과 상업

m.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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