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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읽고

책 :: 잔류 인구, 엘리자베스 문

by Hyedy 2024. 1. 20.



오랜만에 너무 재미있는 책을 발견했다. 내가 재미있게 읽은 프로젝트 헤일메리, 유령해마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다. 구병모의 소설들처럼 나이가 지긋한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도 참 좋아해서 더욱 재밌게 읽었다. 젊은 남녀, 중년과 노년의 남성이 주인공인 작품들은 엄청나게 신선하지 않은 이상 다 식상하게 느껴져 중년, 노년의 여성 이야기에 더 끌린다. 특정 나이대가 되면 ‘어머니’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에서 어떤 새로운 캐릭터일지 궁금하다.

소설 속에서도 특히 이 부분을 자주 다룬다. 이주 후 40년 가까이 콜로니에서 살아온 오필리아는 재봉틀 일에도 능숙하고 정원도 잘 가꾸며 요리 실력도 좋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늙고 힘이 없는 노인, 자식과 아들을 보내고 정신이 나간 여자로 대한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중년의 여성을 ‘어머니’ 혹은 ‘이모’로 부르는 호칭이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는 글을 봤다. 부끄럽게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였다. 독일 친구와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내 가족들을 만나서 인사할 일이 있었는데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길래 이름을 알려주긴 했지만 한국에서는 이름을 부르지 않고 ‘어머님’, ‘아버님’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그러자 독일 친구는 “왜 내 부모님도 아닌데 그렇게 불러?”라고 신선한 질문을 했다. 그러게 말이다. 나는 그 친구의 어머니를 이름으로 부르는데.

오필리아를 늙은 노인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을 보며 오필리아가 보란 듯이 더 잘살았으면 하고 응원하게 된다. 오필리아는 이주하는 것을 거부하며 혼자 남고 싶다고 하자 사람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외롭지 않냐고 오필리아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사실 오필리아는 자유를 즐기고 혼자서도 너무 잘 지낸다. 세상에 혼자 남겨져 고독을 즐기며 필요 없는 옷과 신발을 다 소각해 버린 그의 자유가 부러웠다. 남의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오롯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하며 살 수 있는 생활. 너무 좋을 거 같다.

괴동물이 등장했을 때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괜히 찾아봤다. 전혀 귀엽지 않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유령 해마를 읽을 때 너무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이유가 뭘까 아이 같아서 그런가? 잔류 인구에 등장하는 아이 같은 괴생물은 가끔 귀엽다가도 실제로 원서 표지에 묘사된 비주얼이 떠올라 귀엽지 않아 졌다. 작가는 왜 이렇게 묘사한 건지 궁금하다.

줄거리는 크게 [잔류 전]-[잔류 후 괴생물 등장]-[탐사 대원 등장] 세 부분으로 나뉜다. 잔류 전 이야기인 초반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어떻게 전개가 될까 싶었는데 괴생물 등장 후 술술 읽힌다. 결말도 극적이기보단 잔잔해서 실망을 하기도 했지만 이내 이게 더 잘 어울리는 결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올해 첫 읽은 책이 재밌어서 기분이 좋다. 강선재 번역가가 번역했다는데 번역도 센스 있게 잘 되어있다. 새해 읽을 책을 찾고 있다면 엘리자베스 문의 잔류 인구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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