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일은 7월 31일로 딱 휴가철이다. 학생 때는 내 생일이 항상 방학 중에 있어서 너무 싫었다. 초등학교 때 뒤에 게시판 꾸미기를 하면 학생들 생일을 달별로 분류해놓아서 매달 생일인 아이들을 축하해주곤 했는데 나는 매번 방학 중이어서 남 생일 축하만 해주고 내 생일 축하는 잘 못 받은 기억이 있다. 중학교 때에도 정말 친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친한 것도 아닌 친구들을 사소하게나마 생일 축하를 해주었는데 내 생일은 방학이라 나는 축하받지도 못 했다. 물론 친한 친구들은 방학이라 하더라도 기억하고 축하를 해주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그냥 그랬다. 방학이라고 해서 덜 만나지도 않고 학기 중만큼이나 친구들을 자주 만나서 별 상관이 없기도 했고 주로 애인과 함께 생일을 보내니 서운할 것도 없었다. 직장인이 되고 이제 일을 하니까 딱 휴가철에 끼어있는 내 생일이 너무 좋다. 지금도 2주 여름휴가를 내서 8월 첫째 주까지 쉬는데 너무 좋다. 날씨도 좋고 휴가를 내고 여유롭게 일어나 맞는 생일은 최고다.
올해도 Arne와 함께 휴가를 내고 즐거운 생일을 보냈다 몇 주 전부터 Arne가 생일 선물로 뭘 받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뭐든 괜찮지만 밥솥은 안된다고 했다. 딱 2.5인 분까지만 되는 미니 밥솥이 있는데 밥을 지을 때마다 밥솥 밖으로 물이 흐른다. 이걸 Arne가 정말로 극혐 해서 볼 때마다 밥솥을 새로 사자고 한다. 근데 그 물은 그냥 닦으면 그만이고 밥도 잘 되는데 굳이 왜 따로 사야 하는지. 나는 사야 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 그냥 쓰고 있었다.
밥솥은 안 된다고 했더니 생일 전까지 계속 밥솥 샀다면서 장난을 치더니 Arne는 내 생일 하루 전날 저녁에 갑자기 어딜 다녀와야 한다며 한 시간 정도 다녀왔다. 뭔 꿍꿍이인지 너무 궁금했지만 물어봐도 절대 알려주지 않아서 이 날 궁금한 나머지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생일 아침이 되고 일어나서 거실로 가려는데 갑자기 Arne가 난리를 치면서 자기가 준비 중이니까 다 완성될 때까지 나오지 말라고 했다. 드디어 나오래서 나갔더니 자기가 생일 선물을 숨겨놨으니 찾아보란다. 참고로 생일 선물은 크기는 조금 작으니까 잘 찾아보랬다. 그래서 주방에서 서랍도 뒤져가며 정신없이 찾고 있었는데 Arne가 없다. 어디 갔나 하고 찾는데 거실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 그래서 소리를 따라가서 거실 문을 열었더니.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이렇게 커다란 선물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선물이라더니 이렇게 커다란 게!!!!
포장도 너무 귀여운 거 아니냐.. 어제 한 시간 동안 사라진 이유가 이렇게 큰 택배를 우리 집으로 받을 수 없으니 친구 집으로 받고 어제 가져와서 위에 창고에 올려놨다고 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포장을 뜯는데 박스에 CASIO라고 적혀 있었다. CASIO...? 시계...? 이렇게 큰데...? 괘종시계를 산 건가 뭐지???? 하고 다 뜯었더니
바로 CASIO의 디지털 피아노! 예전에 취미로 피아노 치고 싶다고 했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나도 디지털 피아노를 사려고 알아보다가 이사 준비하고 바빠져서 까먹었다. 감동 감동~ 건반도 80개가 넘고 건반도 가볍지 않고 누르는 느낌이 난다. 이전에 한국에서 쓰던 것도 있었는데 64 건반인가 그래서 칠 맛이 안 났다. 그런데 이건 건반도 많고 페달도 딸려온다. 디자인도 깔끔해서 취미로 하기 딱 좋다 🥰Arne가 스탠드도 같이 샀지만 놔둘 곳이 없어서 일단 거실 한쪽에 놔뒀다.
선물 개봉을 끝내고 아침을 준비했다. 원래는 Mett을 먹기로 했는데 갑자기 마음이 변해서 크래커 위에 아보카도와 연어를 먹었다. 밑에 소스는 오이와 크림치즈를 섞은 건데 상큼하게 딱 잘 어울린다. 원래 간단히 먹고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소풍을 가려고 했는데 아침이 너무 맛있는 나머지 많이 먹어서 점심이 돼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커피와 물만 챙겨서 근처 공원으로 갔다.
어쩜 이렇게 날씨도 딱이지? 요즘 계속 흐리다가 이 날 날씨가 참 좋았다. 누워서 햇빛을 좀 쬐다가 배도 고프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에서 연어 초밥과 롤을 해 먹었다!! 드디어~~~~!!!!! 생일에 뭐 먹고 싶냐고 묻길래 초밥 먹고 싶다고 했다. 보통이라면 식당을 갔을 텐데 아직 코로나 때문에 나가기도 껄끄럽고 집 근처에 해산물 가게도 있겠다 직접 만들어봤다. 결과는 생각보다 만족! 한국 초밥집에서 사 먹는 초밥만큼 입에서 녹지는 않았지만 집에서 만든 것치곤 맛있었다. 롤이 만들기 더 귀찮은데 맛은 초밥보다 덜 했다. 다음엔 그냥 초밥만 하는 걸로. 올해 생일도 Arne과 함께 즐겁게 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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