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방문자는 단편 페미니즘 소설들로 구성된 책이다. 「새벽의 방문자」는 그중 첫 번째 소설이다. 혼자 사는 주인공은 관리실에서 택배를 가지고 오는 그 짧은 순간 조차 사는 곳이 노출될까 택배 박스에 적힌 호수를 집으로 가지고 온다. 여자 혼자 이 곳에 산다는 걸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거다. 하지만 여자 혼자 산다는 걸 알기라고 한 듯 새벽에 의문의 남자가 벨을 누른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혼자 사는 집에 새벽에 웬 남자가 벨을 누르고 심지어 문을 열려고 한다니. 알고 보니 오피스텔의 두 채의 외관이 같아서 새벽마다 성매매를 하러 오는 남자들이 주인공의 집으로 잘못 찾아와 벨을 누르는 것이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잊고 있던 익숙한 공포가 다시 떠올랐다.
독일에 오기 전 학교 근처에서 혼자 자취를 하면서 자주 느꼈던 공포들. 집으로 가는 골목길 그 3분도 채 되지 않는 길이 무서워서 뛰어가거나 큰 거리로 돌아서 집으로 갔다. 집에 들어오면 혹시나 누가 들어오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하면서 자기 전에 한 번 더 잠금장치를 확인하곤 했다. 매일 나와 함께 했던 공포들을 독일에 와서는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왜 독일에서 이런 공포들을 다 잊어버리게 된 걸까. 누군가와 같이 살아서 일수도 있고 독일어를 모르니 흉흉한 소식에 자주 노출되지 않아서 일수도 있고 사는 동네가 다르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짐작해본다. 단순히 남자와 같이 산다는 이유가 아닌 복합적인 이유였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여자 혼자 살아도 무섭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니까.
「새벽의 방문자」를 읽고는 이게 왜 타이틀로 뽑혔는지 알겠다 싶었다. 모르는 남자들에게서 왔던 공포심들이 이유를 알게 된 이후 한심함으로 변하는 서사에 작가의 노트까지 완벽하다.
소설이지만 소설 같지 않은 이야기들에 페이지를 넘기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유미의 기분」에서는 수업 시간에 선생이 “여자는 꼬리가 아홉이라서 꼬리를 잘 친다”며 아무렇지 않게 여성 혐오적인 발언을 한다. 누구 하나 지적하는 이 없이 다들 웃어넘기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유미만 웃기지 않고 불쾌하다며 지적한다. 읽는 나조차 조마조마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학생은 유미가 ‘메갈’이라며 놀려댄다. 너무 현실적이라 작가 본인이 목격한 것을 적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 없이 말을 뱉은 사람에겐 별 일 아니겠지만 그 사소한 발언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에게는 사소한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이런 용기를 가진 사람들 덕분에 세상이 조금씩 변한다. 이야기 속 유미도 부디 앞으로도 계속 불쾌한 농담에 웃어넘기지 않고 자신의 기분에 대해 확신을 갖고 살아가길 바란다.
이 책을 읽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라고 리뷰를 남긴 사람이 있던데 그 사람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세상의 모든 읽을 겪은 것도 아닌데 단순히 본인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어떻게 허무맹랑하다며 확신에 차서 이야기를 하는가. 너무나도 편협한 사고방식이다. 누구에게는 허구 같이 느껴질 수 있는 반면에 누구에게는 너무 있을 법한 혹은 이미 일어난 일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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