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먹는 속도가 굉장히 느리다. 한국 고깃집에서 구워 먹을 땐 불판 위에 있으니 천천히 먹어도 식을 일이 없어서 좋았는데 여기서 스테이크를 먹을 때면 거의 반은 차갑게 식은 고기를 먹어야 했다. 밖에서 바베큐를 하지 않는 이상 삼겹살 같은 것도 프라이팬에 다 구워서 접시에 옮겨 담아 먹어야 해서 고기들이 나중엔 차갑고 질겨져서 별로였다.
이 얘기를 하면서 1-2구짜리 인덕션이나 부르스타 같은 걸 사고 싶다고 하니 Arne가 그럴 바에 그냥 제대로 된 그릴을 사자고 했다. 평소 같으면 딱 한 가지로만 쓸 수 있는 제품을 싫어하면서 웬일로 그릴을 사자고 하지? 인덕션을 사면 그걸로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고 샤브샤브도 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러면 못생긴 프라이팬에 구워야 하지 않냐며 Arne는 꿋꿋이 예쁘게 생긴 그릴을 사고 싶다며 좀 찾아보더니 바로 전기그릴을 질러버렸다.
위의 전기그릴이 Arne가 지른 제품인데 테두리에 있는 나무가 예뻐서 마음에 든댄다. 뭐 나는 고기만 구울 수 있다면 상관없으니.. 좀 큰 거 같긴 했는데 후기도 좋아보였다.
그릴은 며칠만에 바로 도착했고 토요일에 친구가 마침 놀러 온다고 해서 바베큐를 하기로 했다. 원래는 초밥을 해 먹기로 했는데 바베큐 그릴이 왔으니 급 메뉴 변경!
새 그릴이라 그런지 반짝반짝하다. 코드를 연결하고 돌려서 불 조절을 해주면 된다.
고기는 종류별로 소고기, 삼겹살, 목살을 샀고 Arn의 바람대로 고기와 같이 구울 아스파라거스, 당근, 토마토도 준비했다. Arne가 어디서 유튜브를 봤는지 자기는 꼭 반찬도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오이무침도 만들었다.
며칠 전에 독일 파로 파김치를 만들었는데 진짜 너무 맛있다. 첫 번째 시도에선 파를 잘게 가르지 않아서 좀 별로여서 이번엔 잘게 쪼개서 했더니 너무 맛있다. 아침엔 짜파게티랑 먹고 저녁에도 고기랑 먹으려고 덜어왔다. Arne는 신김치를 좋아하기 때문에 맛이 강한 파김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전부다 내 차지다.
처음은 소고기로 시작했다. 입에서 살살 녹았다. 스테이크보다 이렇게 바로 구워 먹는 소고기가 더 맛있다. 특별한 소스 없이 소금이라 후추랑만 먹어도 너무 맛있었다. 고기도 너무 기름지지도 않고 딱 적당했는데 Arne에게 물어보니 부위는 아마 Hüfte일거라고 한다.
다음은 삼겹살이랑 목살을 구웠다. 삼겹살은 이전에 프라이팬으로도 몇 번 구워 먹어서 별 기대를 안 했는데 깜짝 놀랐다. 프라이팬에서 굽는 거랑 이렇게 차이가 날 줄이야. 평소에 비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 날은 비계조차 너무 고소해서 비계가 많은 걸로 골라먹었다. 연기가 많이 날까 봐 조금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연기도 별로 나지 않았다. 바로 옆에 창문을 활짝 열고 해서 그런지 냄새도 별로 안 나고 식탁보를 깔아서 튄 기름 치울 일도 없었다.
같이 저녁을 먹은 친구에게 이게 바로 코리안 바베큐야~ 이렇게 쌈장도 넣고 이렇게 해서 싸먹어~ 알려줬더니 엄청 잘 먹었다. 특히 오이무침과 쌈장을 좋아했는데 첨에 덜어준 것도 싹 비워서 더 줬을 정도로 좋아했다. 디저트로는 직접 구운 호두파이를 먹었다. 너무너무 만족스러운 저녁식사였다. 이 좋은 전기그릴을 왜 이제야 샀을까! 이제 한국에서 먹던 삼겹살을 그리워할 필요도 없이 집에서 구워 먹으면 된다. Arne도 너무 만족스럽다며 자주 쓰기로 했다. 고기도 맛있었지만 특히 나는 구운 토마토가 너무 맛있었는데 다른 거 뭘 또 구워 먹을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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