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어쩌다 보니 주말을 보내는 루틴이 생겼다. 예전에는 주말을 어떻게 보냈는지 딱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요즘은 생산적이면서도 여유로운 주말을 보내고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일단 주중 저녁을 간단히 먹기 때문에 주말이 오기 며칠 전부터 주말에 뭘 먹을지 이야기한다. 시간이 많은 주말인 만큼 주중에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요리는 절대 안 된다. 주말 메뉴는 항상 특별해야 한다. 이번 주말은 토요일엔 만두를 만들고 일요일에는 Barbacoa를 먹기로 했다. Barbacoa는 Pulled pork처럼 타코에 넣어먹던 요리인데 밥이랑 먹어도 맛있을 것 같아서 이번에는 타코가 아닌 밥이랑 먹기로 결정했다. 주말 메뉴가 정해지면 금요일 저녁에 마트를 다녀오고 해산물이나 육류 등 신선한 재료가 필요한 경우는 토요일 오전에 마트를 다녀온다.
요즘 해가 빨리 떠서 그런지 늦게까지 잠을 자지도 않고 일어나는 게 너무 상쾌하다. 심지어 알람이 없어도 8시에 정도에 일어난다. 일어나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나 휴대폰으로 확인 좀 해주고 씻고 일어나 아침을 먹는다. 아침은 대부분 빵을 계란 요리, 치즈 등과 함께 독일식으로 먹는다. 입맛이 없을 땐 계란 프라이만 먹기도 하고 가끔은 케첩이나 스리라차 소스를 뿌리기도 한다. 아침으로 뭐든지 먹을 수 있는 나와 동거인은 아침밥에 대해 굉장히 엄격한 룰을 가지고 있다. 이날도 아침으로 스크램블드 에그를 먹는데 너무 심심한 맛이길래 스리라차 소스를 살짝 뿌렸더니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보고 있으면 눈이 아플 지경이라느니' 동거인은 아주 기겁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방식대로 아침을 먹는다.
아침을 먹고 나면 주중 동안 미뤄왔던 청소 타임이다. 주중에는 왜 이렇게 청소할 기분이 나지 않는지 모르겠다. 미뤄왔던 청소기도 돌리고 주방도 정리하고 식물들도 좀 돌봐주고 나면 보통 11시가 된다. 이때 딱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서 저녁을 먹으며 영상 통화가 걸려오는데 이번 주말에는 가족들이 주말 농장에서 일하고 저녁을 늦게 먹느라 통화를 못 했다. 소파에 누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보다가 12시가 되면 Gather Town으로 들어가 디자인 스터디를 한다.
이직 준비를 할 때 시작했던 포트폴리오 스터디였는데 나를 포함해서 이직에 이미 성공한 사람도 있고 해서 디자인 스터디로 바뀌었다. 2시간 동안 진행되는 스터디에서 다른 사람들의 포트폴리오에 피드백을 주거나 디자인 공부를 한다. 최근에는 Udacity에 있는 Product Design 강의를 봤다. 디자인 스터디가 끝나면 자유시간이다.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날씨가 좋으면 근처 공원에 피크닉을 가기도 한다. 이날은 동거인과 함께 시내에 있는 아시아마트를 가기로 했는데 나와서 HVV앱을 확인해보니 바로 가는 지하철이 공사 중인지 뜨지 않고 돌아 돌아 환승 루트만 떴다. 우리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아시아마트를 그렇게 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며 빠르게 포기를 하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만두를 먹고 싶다고 해서 저녁으로 만두 빚었는데 각자 분담을 해서 몇 번 만두를 만들다 보니 아주 만두 공장처럼 척하면 척이다. 동거인은 들어갈 각종 야채들을 다 잘게 썰고 나는 야채를 볶아 소를 만든 다음에 만두를 빚는다. 그러면 동거인은 그 만두들이 잘 빚어졌는지 확인을 한 다음 찐다. 찌는 것도 찜기 위에 만두들이 달라붙지 않도록 종이 호일을 오려서 넣고 스톱워치를 켜놓고 8분 딱 찌는데 그러면 완벽한 만두가 나온다. 쪄서 바로 먹는 만두는 군만두, 물만두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맛있다. 이날은 간까지 딱 적당히 되어서 먹을 때마다 육즙 팡팡 입에서 녹는다며 서로 감탄하면서 행복한 만두 타임을 가졌다.
일요일에는 아침을 먹고 청소를 하진 않지만 2주마다 독서 모임이 있다. 혼자 책을 읽고 감상문을 적는 것도 좋지만 다른 사람들과 좋은 책을 공유하고 또 좋은 책들을 추천받을 수 있어서 너무 유익한 모임이다. 이번 모임에서는 '디자이너, 서른', '100가지 물건으로 다시 쓰는 여성 세계사'를 소개했고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는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추천받았다. 각자 읽은 책을 소개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너무 재밌어서 참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일요일에는 별 다른 약속 없이 집에서 자유시간을 가지는데 오늘은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기로 했다. 작년 말에 보고 처음 보는 거라 어떻게 지냈는지 근황 토크부터 시작해서 여름휴가는 어떻게 보낼 건지 많은 이야기들을 했다. 점심으로 연어 시금치 라쟈냐를 먹고 초코치노를 먹은 다음 좀 쌀쌀했던 날씨가 햇빛이 좀 비치니 제법 따뜻해져서 아이스크림까지 먹었다. 완벽한 코스였다 ✨
다 먹고 집으로 돌아오니 Barbacoa 냄새가 나를 반겼다. UEFA 경기를 좀 보다가 저녁을 먹었는데 3시간 동안 오븐에서 요리한 Barbacoa는 갈비찜처럼 너무 부드럽고 맛있었다. 저녁을 먹고 책도 읽고 좀 쉬다 보니 벌써 잘 시간이다. 나름 알차게 보낸 것 같은데 주말이 너무 짧게 느껴져 일요일 저녁에는 항상 너무 아쉽다. 벌써 다음 주말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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