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 도착해 방에 넣어진 이후 사진과 같은 이동식 침대에 누워 무한 대기가 시작됐다. 독일 응급실은 왜인진 모르겠지만 인터넷도 잘 안 터진다. 이전에도 다른 일로 응급실을 몇 번 온 적 있는데 손이 칼에 베여 피가 뚝뚝 흐르는데도 몇 시간 기다렸기 때문에 이 상처로는 한참 기다려야 할 걸 알고 있었다. 한 시간쯤 기다렸나 의사인지 간호사인지 와서 드디어 첫 체크를 했다.
👨🏻⚕️: 무슨 일이야 어떻게 다친 거야?
🤕: 자전거 어쩌고저쩌고…
👨🏻⚕️: 어디 어디 아픈데? 여기는? (팔, 다리, 등, 머리, 목 등등 체크함) &/@;£;@: 주사는 맞았어?
🤕: 그.. 그게 뭔데? 영어로 뭐야?
👨🏻⚕️: (검색 후) 영어로도 똑같은데
🤕: (응급실 인터넷 안 돼서 검색 못 함) 몰라 그럼…
👨🏻⚕️: … 그럼 그 주사도 새로 맞자
나중에 느린 인터넷으로 검색했더니 파상풍(Tetanus) 주사였다. 이러고 나간 뒤 또 무한 대기…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친구가 다시 카운터에 가서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문의를 했는데 지금 응급환자들이 들어와서 늦어진다고 곧 갈 거라고 했다. 그리고 한 시간 뒤에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당시 얼굴은 이렇게 피범벅이 되어있었는네 의사가 일단 보더니 거즈에 소독약을 잔뜩 묻혀서 피를 닦아냈다. 너무 아파하니까 적신 거즈를 상처에 대서 피를 좀 녹여서 닦아 내라면서 주더니 어디론가 또 갔다. 드디어 처치를 하고 집에 가나 싶었더니 사라져버렸다. 별 수 있나 나보다 더 응급인 환자가 왔겠지 뭐… 그렇게 또 한 30분을 기다리니 의사가 돌아왔다.
👨🏻⚕️: 흠 이거 꿰매야 할 거 같은데? 두 곳
🤕: 안돼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렇게 심해???
👨🏻⚕️: ㅇㅇ그냥 놔두기엔 상처가 좀 깊네. 꿰맬 때 마취 맞고 할래 그냥 할래? 어차피 상처가 그렇게 크지 않아서 그냥 해도 될 거 같아
독일은 치과 치료 때도 그렇고 마취할지 말지 나한테 물어보는 케이스가 종종 있다. 치과 치료할 때 마취 없어도 괜찮을 거래서 ㅇㅋ했는데 치료 시작하자마자 아파서 마취 주사를 도중에 놓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놔달라고 했다. 같이 있던 독일인 친구는 꿰매는 거나 마취 주사나 비슷할 거라면서 자기는 그냥 바로 뀌맬거라고 했다. 어림도 없지 무조건 마취 주사 맞는다.
한국 병원처럼 세심하게 상처 소독해 주고 눈 부실까 얼굴 가려주고 그런 거 없다. 날 것 그 자체로 그냥 바로 마취 주사 두 방 놓고 꿰매버렸다.
🤕: ㅠㅠㅠ나 얼굴에 흉터 남으면 어떡해???
👤: 아냐 이거 나 손 봐바 나 저번에 상처 난 거 꿰맸는데
어딘지도 안 보이지? 괜찮을 거야 그렇죠???
👨🏻⚕️: 아니 당연히 흉터 남을 거 같은데;;;
🤕: 안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지금 다 꿰맸는데 좀 더 상처 예쁘게 아물게 하려면 한 번 더 꿰매면 좋을 거 같아 어떡할까?
🤕: 더 꿰매!!! 최대한 예쁘게 해 줘 제발ㅠ
👨🏻⚕️: ㅇㅋㅇㅋ알았어
…
👨🏻⚕️: 됐다 상처는 이만하면 됐고 이따가 팔이랑 다리 찍어봐
🤕: ㅇㅋ… 회사에 병가 내는 거 (Arbeitsunfähigkeitsbescheinigung) 도 여기서 받을 수 있어?
👨🏻⚕️: ㄴㄴ 그건 너 하우스 닥터 가서 받아 거기 가서 체크받고 일주일 후에 실밥 풀면 돼
얼레벌레 치료가 마무리되고 정신없어서 잊고 있었는데 턱에 난 상처는 봐주지도 않았다. 한국이었으면 습윤밴드라도 붙여줬을 텐데!!!
거울을 보니 아주 더 끔찍한 몰골이 되었다. 입술은 벌에 쏘인 거 마냥 세 배는 커져 있었고 얻어터진 거처럼 피떡이 되었다. 그 위에 프랑켄슈타인처럼 검은 실밥들이 보였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이제 다 끝났나 싶었는데 아직 맨 처음 말했던 주사도 안 맞았고 엑스레이도 찍어야 해서 또 하염없이 기다렸다. 이쯤 되니 검사고 뭐고 뼈도 안 부러진 거 같으니 제발 집에 보내달라고 하고 싶었다. 응급실에 온 초반에 옆방에서 누가 몰래 나가다가 들켜서 왜 나가냐고 들어가라고 소란을 피웠는데 이제야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
한참을 기다려서 드디어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찍기 전에도 엑스레이실 앞으로 데려가더니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덩그러니 놔둬서 나를 잊어버린 줄 알았다. 한 15분 기다리니까 저 멀리 다른 방에서 들어오라고 하더라. 쉬운 게 없는 독일 응급실이다 😫
당연히 검사 결과도 한참 기다려야 했는데 오더니 뼈 부러진 거 없이 멀쩡하다고 그냥 가라고 하더라. 그래서 나 지금 오른쪽 팔 못 움직이겠다고 뭐라도 해주면 안 되냐고 하니 크림 발라서 붕대로 감싸줬다.
🤕: 나 팔 아예 못 움직이겠는데 어깨에 걸 수 있는 거도 주면 안 돼? 걸을 때마다 아파
👩🏽⚕️: ㄴㄴ 그거 너 어깨에 안 좋음
🤕: 그래도 걸을 때마다 너무 아파ㅠ
👩🏽⚕️: 그래서???
🤕: 그럼 붕대로 어깨에라도 감아줘ㅠ
👩🏽⚕️: ㅇㅋ
사정사정해서 겨우 팔을 어깨에 고정시키고 나왔다. 드디어 응급치료 끝~~!!!! 응급 치료 리포트 (Notfallbericht - endgültig)를 주는데 이후 리포트 할 때 필요하니 까먹지 말고 꼭 챙겨 온다. 7시 반쯤 응급실에 도착했는데 나올 때 시간을 확인해 보니 밤 12시 반이었다. 받은 치료와 검사라곤 입술 위 조금 꿰매고 팔다리 엑스레이가 전부다. 90%는 기다리느라고 시간 다 쓴 듯. 응급실은 다시 오고 싶지 않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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