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크리스마스는 그냥 별 다를 거 없이 가족과 함께 케이크 먹으면서 보내는 그런 날이다. 어릴 때야 교회도 가고 선물도 받고 했지만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산타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되고 더 이상 설레는 크리스마스는 없었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아직도 교회를 다니는 엄마는 교회를 갔고 나머지 가족들은 별 다를 거 없이 맛있는 음식이나 먹으면서 보냈다. 재작년에는 Arne가 한국에 놀러 와서 같이 보냈고 작년에는 독일에서 보냈다. 그 이전 한국에 있을 때는 매년 크리스마스에 특별히 한 것도 없어서 뭘 했는지 생각도 안 난다. 친구들이랑 놀았던 거 같기도 하고.
재작년 Arne가 한국에 오기로 했을 때 와서 얼마나 머물지 계획을 짜고 있었다. Arne는 크리스마스를 한국에서 보내는 것에 대해서 가족들한테 이야기를 해야한다고 했다. 항상 가족들에게 쿨하게 결정했던 Arne가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놀랐다. 서울에서 자취할 때 나나는 크리스마스를 가족들과 따로 보냈던 적도 많아서 별생각 없었는데 독일인인 Arne에게 크리스마스는 1년에 한 번 온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아주 큰 행사였다. 이때 Arne가 가족들한테 크리스마스를 한국에서 보낸다고 했을 때 좀 아쉬워했다고 했다.
독일에서 크리스마스는 단순한 종교적인 것을 넘어서 큰 축제같은 명절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다. 할로윈만 지나면 일찌감치 크리스마스 쿠키도 나오고 마켓도 생기고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회사 사람들도 크리스마스를 맞이해서 휴가를 내는데 이때 연말까지 엄청 많이들 쉰다.
우리 팀은 각자 휴가를 캘린더에 공유하는데 하늘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다 휴가다. 휴가로 꽉 찬 캘린더를 보면 알겠지만 12월에 엄청 많이 쉰다. 초록색으로 된 부분은 회사에서 쉬는 날로 정해준 거라서 휴가를 따로 쓰지 않아도 되는 날이다. 덕분에 나는 올해 휴가가 2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27일, 30일 이틀 휴가를 쓰면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새해까지 쉴 수 있다. 대박!
나는 휴가가 별로 남지 않아서 짧게 쉬는 편이고 휴가가 많이 남은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부터 쉰다. 휴가가 엄청나게 많은 Arne는 너무 부럽게도 이주일 전부터 쉬는 중이다. 독일 회사에 다니면서 좋은 점은 연말에 이렇게 많이 쉴 수도 있고 휴가를 붙여서 쓴다고 절대 눈치주지 않는다. 심지어 나는 이틀밖에 없어서 크리스마스 전날까지 일해야 하는데 오늘 팀장이 와서 23일 월요일에 굳이 회사에 안 나와도 되고 재택근무하라고 그랬다. 어차피 다들 휴가라서 나오는 사람도 없을 거라고. 만세!! 그러면 12월 20일에 마지막 출근을 하고 새해에 또 휴가를 써서 1월 6일에 출근을 한다. 나 말고도 다들 휴가를 써서 대부분 6일에 출근한다.
우리 회사만 크리스마스 휴가에 관대한게 아니라 독일의 많은 회사들이 이렇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연말이 되면 담당자들이 다 휴가를 가서 일처리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연말에 나는 놀면서 내 일은 또 빨리 해달라고 하는 것도 놀부 심보고 내 일을 빨리 처리해달라고 하다 보면 다들 빨리빨리가 당연하게 되어 언젠간 나도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독일에서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나는 아등바등 사는 것보다 이렇게 다 같이 여유롭게 사는 게 더 좋다. 언젠간 다 같이 주 4일 일하는 날이 오길 바라고 있다. 한국보다 독일에서 더 빨리 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나도 이제 모든 게 느려 터진 독일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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