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6개월~1년에 한 번씩 산부인과 정기검진을 받는 게 좋다고 한다. 독일에 오기 전에 받고 왔으니 이제 받을 때가 됐다. 그리고 자궁경부암(HPV) 백신을 맞은 적이 없는데 가입한 TK보험에서 자궁경부암(HPV) 백신을 만 27세 전까지만 지원을 해준다고 한다. 왜지? 이왕 할 거 30세까지 해주지. 아무튼 나는 지금 딱 만 26세니 저렴한 비용으로 맞으려면 다음 생일 전까지 빨리 맞아야 했다. 보험 커버 관련 자세한 내용은 아래 TK 사이트에 나와있다. 보험이 되면 10유로 정도만 내면 되지만 아니면 약 150유로를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
독일에서 병원 가기란 정말 쉽지 않다. 병원에 가면 당일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한국과 달리 독일은 대부분 예약을 하고 가야 하고 예약을 하면 최소 1-2주에서 몇 달씩 걸린다. 5월쯤인가 집 근처 산부인과를 찾아갔더니 새로운 환자는 안 받는다고 했다. 이렇게 병원이 예약 시스템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새로운 환자를 안 받는 병원도 있다. 한국에서 아무 병원이나 가던 나는 놀라울 따름이다. 다른 산부인과를 찾아가서 정기검진을 받고 싶다고 했더니 11월 초에나 예약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때가 5월인데! 임신한 것도 아니고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니 우선순위가 아니라 밀리고 밀려서 11월에나 되나 보다. 근데 뭐 어쩌겠나. 알았다고 하고 예약을 잡아놨다. 몇 주 뒤였나 페이스북에서 온라인으로 예약 잡을 수 있는 페이지를 발견했다.
독일 병원 온라인 예약 사이트 바로가기 👉 https://www.doctolib.de/
주소를 넣고 병원 종류를 선택하면 근처 병원을 보여주는데 그중에 오늘(8월) 날짜로 휴가를 다녀와서 예약이 가능한 곳이 있길래 Anre가 예약을 잡아줬다. 드디어 당일이 돼서 병원이 회사 근처라 아침에 출근하고 10시쯤 예약 시간이 돼서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가서 처음 왔다고 하며 TK 보험 카드를 보여주며 접수를 했다. 여기까진 무난하게 잘 알 아듣고 대답했는데 무슨 종이를 주면서 이름, 휴대전화, 날짜를 적고 사인하고 또 독일어로 가득 적힌 다른 종이들을 줬다. 이걸 주면서 뭐라 뭐라고 말하는데 잘 못 알아 들었다. 그래도 중요한 정보인 것 같아 혹시 영어 할 줄 아냐고 물어보니 접수창구에 4명이나 있는데 다들 영어를 못 하고 자기 의사도 영어를 못 한다고 그랬다. 경험상 대부분 의사들은 영어를 대충이라도 할 줄 알던데.. 솔직히 조금 놀랐다.
일단 종이는 적어야 할 것 같아서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겨우겨우 하고 못 알아 들었던 부분을 물어보려고 Arne한테 전화해서 네가 대화하고 설명 좀 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Arne는 병원에서 대충이라도 영어로 설명을 할 줄 알았다면서 미안하다고 자기가 이야기해보겠다고 했다. 다시 기다려서 접수창구에 가서 휴대폰으로 이야기해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돌아오는 대답은 '어쩌고 저쩌고 안돼. 내가 어떻게 너 남친이랑 대화하니?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내가 또 패닉돼서 '어떡하지...' 하고 있으니까 '우리 지금 바빠서 너 도와줄 시간 없어. 사람들도 많고. 종이 들고 가서 집 가서 적어서 10월에 예약 잡고 다시 오든지'라는 식으로 말했다. 내가 집에 가서 적어와도 너네도 의사도 영어 못 한다며.. 또 이 상황이 되풀이될 것 같아서 그냥 됐다고 하고 나왔다. 내가 독일어를 잘 못 알아듣는 걸 알면서도 그들은 도와주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전에 갔던 치과에서는 그들도 영어를 잘 못하고 나도 독일어를 잘 못하지만 번역기 써가며 영어 할 줄 아는 직원 찾고 찾아 데려와서 진료를 무사히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이 정말 친절했던 건가 보다.
병원 문 밖을 나올 때까지 통화는 계속 켜져 있어 도와주려고 했던 Arne도 내가 이야기하는 걸 다 들었다. Arne가 병원의 사람들이 같은 독일인인게 부끄러울 정도로 정말 무례했다고 했다. 아마 내가 못 알아듣는 걸 알아서 막말을 한 걸까.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친절하지 않다고만 생각했지 말조차도 무례하게 한 줄 몰랐다. 고작 병원 하나 가는데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다니 너무 서러웠다. 한국이라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독일에서 겪을 때마다 진짜 서럽고 한국으로 다시 가고 싶어 진다. 서러운 마음에 통화를 하면서 다시 회사로 가는 중에 길을 걸어가던 3명의 남자 무리가 나를 툭 치면서 '니하오'라고 소리쳤다. 순간 당황해서 아무 반응을 못 했는데 자기들 갈 길 가면서 '헤이 차이니즈~' '니하오~' 이런 식으로 계속 소리치며 사라졌다. 다사다난한 하루다. 뭐라고 말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아무 대응 못 한 게 아직까지도 화가 난다.
진짜 거지같은 마음을 겨우 추스르고 회사로 돌아왔는데 동료들이 왜 벌써 왔냐고 해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줬다. 병원의 이야기부터 길에서 인종차별을 당한 것까지 말하고 나니 잘 참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울컥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고맙게도 동료들이 모두 병원의 대처도 거지 같았고 자기들이 영어로 진료를 해주는 산부인과를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심지어 내가 원하면 병원에 항의 전화도 해주고 안 좋은 별점도 남겨준다며 정말 위로가 됐다. 다 같이 미팅룸에 앉아서 자기가 아는 산부인과에 차례차례 전화하면서 '영어로 진료도 봐주는지', '가장 빠른 예약 날짜가 언젠지?' 물어봐줬다. 영어로 진료가 가능했던 병원 중에 한 곳은 제일 빠른 날짜가 1월이었는데 자궁경부암 보험 커버 때문에 생일 전까지 3번 다 끝내고 싶다고 하니 그전까지 된다고(?)해서 일단 알았다고 하고 다른데도 알아봤다. 지금이 8월인데 제일 빠른 예약 날짜가 1월이라니. 말이 되냐! 그래서 다른 병원에 전화했는데 여기는 영어로 진료도 가능하고 웬일인지 다다음주에 진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좋다고 바로 예약을 잡아달라고 했다. 하루 종일 거지 같은 기분으로 있을 뻔했는데 고마운 동료들의 도움으로 기분이 좀 괜찮아졌다. 독일에서 사는 게 참 쉽지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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