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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 사는

독일 병원 :: 산부인과 방문기 (정기검진, 자궁경부암 백신)

by Hyedy 2019. 8. 28.

서러웠던 첫 산부인과 방문을 뒤로하고 어제 동료가 예약 잡아주었던 산부인과를 다녀왔다. 근무 시간에 병원을 가려면 연차를 써야 하는 한국과 달리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다들 당연하게 근무 시간에 병원에 다녀온다고 몇 시간씩 자리를 비운다. 그래서 나도 부담 없이 오전 오후 상관없이 젤 빠른 걸로 예약을 잡아달라고 해서 한가한 오후 3시로 예약이 잡혔다. 

 

 

독일은 병원이라 하더라도 가정집 같이 생긴 건물이 많고 간판도 앞에 작게 달려있어서 항상 헷갈린다. 그리고 가정집에 방문하는 것처럼 초인종을 눌러서 문을 열어줘야 들어갈 수 있다. 이 때도 긴가민가하다가 건물 번호가 맞길래 맞겠지 하면서 들어갔다. 

 

 

휑하고 으스스한 분위기에 조금 쫄았지만 한 계단을 올라가니 바로 예약 잡아뒀던 산부인과 이름이 보였다. 들어가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썰렁했다. 애매한 화요일 오후 3시라서 그런지 기다리는 환자는 나뿐이었고 진료받고 있는 다른 환자 한 명 밖에 없었다. 오래 기다리는 것보다야 이게 낫다. 데스크에 가서 예약 잡고 왔다고 하며 보험 카드를 보여줬다. 지난 병원과 마찬가지로 뭘 적으라면서 종이를 줬다. 지난 병원에서는 마지막 생리가 언제인지, 임신했는지 이런저런 질문들이 적혀있는 종이도 적어야 했는데 이 병원에선 그런 건 없고 휴대폰 번호와 이메일 등 개인정보 밖에 안 적었다. 접수해주던 간호사 분이 뭐라고 뭐라고 말했는데 겨우 알아듣고 대답 후에 혹시 영어로 할 줄 아냐고 물어봤더니 자기는 영어를 잘 못 한다고 했다. 근데 의사는 영어 할 줄 아니까 걱정 말라고 기다리고 있으면 부른다고 했다. 

 

 

 

그나마 아늑했던 대기실

 

실내라 그런지 휴대폰 데이터도 안 터지고 해서 그냥 멍때리고 있었다. 안 믿기겠지만 독일에는 아직도 실내로 들어가면 데이터가 안 터지는 곳이 많다. 특히 내가 저렴한 알디톡을 쓰고 있어서 그런지 보다폰이나 텔레콤은 안 그런데 알디톡은 안 터지는 곳이 종종 있다. 좀 기다리니까 내 이름을 불러서 진료실로 들어갔다. 진료실은 사진은 못 찍었지만 책상 하나에 옆에 진료를 하는 의자가 있었고 굉장히 썰렁했다. 한국과 달리 갈아입을 옷도 주지 않고 그냥 진료한다는 후기들을 봐서 놀라진 않았지만 한국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이윽고 의사가 들어왔고 이름을 소개하며 악수를 했다. 한국에선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독일에서는 의사랑도 악수하나보다. 의사한테 영어로 진료가 가능하냐고 하니까 '당연하지~ 문제없어'하면서 흔쾌히 영어로 대답했다. 

 

 

👨🏻‍⚕️: 산부인과엔 무슨 일로 왔나요?

👩🏻: 딱히 어디가 아파서 온건 아니고 산부인과 정기 검진 마지막으로 한게 1년 전 한국.. 어쩌고 저쩌고.. 독일에서 아직 한 번도 검진 받은적 없고.. 자궁경부암 백신을 TK에서 만 26세까지 커버해주는데 내가 딱 만 26세라 받고 싶다 이러쿵저러쿵

👨🏻‍⚕️: ㅇㅋㅇㅋ보험 관련은 잘 모르겠는데.. 자궁경부암 백신은 일단 병원에서 바로 보험 커버는 안되고 네가 주사 사서 일단 돈 내고 나중에 보험사에 청구해야 돼

👩🏻: 그래??? (어떤 블로그에서 본 적 있는 것 같음) ㅇㅋㅇㅋ 일단 검사받고 자궁경부암 예방주사도 오늘받을래!

👨🏻‍⚕️: 그럼 검진할게요. 저기 옷 의자에 벗어두고 의자에 올라가세요.

👩🏻: 띠용..

 

 

갈아입을 치마를 안 주는 걸 알고 원피스를 입고 왔지만 정말 아무렇지 않게 내 속옷을 그냥 바로 옆에 있는 의자에 올려두면 된다고 해서 당황했다. 환자들을 편하게 대하려고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건가? 그렇게 속옷을 벗고 의자에 올라가 앉았는데 독일인 기준인지 의자가 너무 높아서 혼자 앉기도 힘들었다. 한국과 비슷하게 각종 검사를 했는데 초음파는 안 하고 유방암 검사를 하기 위해서 가슴을 만져보고 검진은 끝났다. 샘플을 랩으로 보낸다고 했는데 결과는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안 말해줘서 어떻게 받는진 모르겠다. 접수할 때 적었던 메일로 연락을 주나? 무슨 문제가 있으면 연락을 주겠지 뭐..

 

자궁경부암(HPV) 예방 주사는 처방전을 써줄 테니 내가 약국에 가서 사 와야 한다고 했다. 정말 한국과는 다른 시스템이구만. 내 손으로 주사를 사와야 한다니. 그래서 처방전을 받아 다시 약국에 가서 사 왔다. 

 

약국에서 받은걸 확인하니 가다실 9라고 적혀있었다. 가다실 9는 가다실 4의 업그레이드 버전인데 예방률이 90%라고 한다. 맨 뒤에 있는 게 가다실9를 받기 위한 처방전이고 중간에 있는게 영수증이다. 주사 값은 162,70유로다. 딱 만 26세로 TK에서 보험처리가 돼서 다행이지 안 됐으면 한화로 약 20만 원을 주고 맞아야 한다. 그전에 블로그에서 여기저기 찾아봤을 땐 이렇게까지 비싼 가격 아니었던 거 같은데 매년 오르는 건지.. 처방전이 이전에 받았던 것들과 다르게 생겨서 혹시나 보험 처리 안 될까 봐 '나 이거 TK에 보험 청구하려고 하는데 이거만 필요한 거맞냐'라고 하니까 이 처방전이랑 약국 영수증 보내면 된다고 했다.

 

기존 가다실은 HPV 16형과 18형이 포함된 4종류의 바이러스(HPV 6·11·16·18형)에 대해 예방 효과를 갖는다. 따라서 70% 예방률을 나타낸다. HPV 6형과 HPV 11형은 생식기 사마귀를 예방한다. 

가다실 9는 9종류의 바이러스(HPV 6·11·16·18·31·33·45·52·58형)가 유발하는 질환을 예방한다. 이에 따른 자궁경부암 전체 예방 범위는 90%에 달한다.  
(출처: http://news1.kr/articles/?2746872)

 

백신을 들고 다시 병원에 가니 간호사가 놔줬다. 독일어로 짧게 대화했는데 간호사가 '내가 영어 하는 것보다 네가 독일어 더 잘하네'라고 했다. 이때 지난번에 갔던 산부인과가 다시 떠올랐다 😤거기 다시는 안 갈 테다! 이 간호사도 영어를 잘은 못하지만 친절했고 대화를 하려고 최대한 노력을 했다. 앞으로 좀 멀어도 여기로 계속 와야겠다. 자궁경부암 두 번째 백신은 2개월 뒤에 오고 세 번째 백신은 6개월 뒤에 오면 된다고 했다. 단순히 백신 맞는 건 예약 잡을 필요 없대서 그냥 알아서 가면 된다. 오예 드디어 독일에서 첫 번째 자궁경부암(HPV) 백신을 무사히 맞았고 나머지 2번의 백신을 맞는 일과 보험 처리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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