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들어본 책이라 언제 한 번 읽어봐야지 싶었다. 천 개의 파랑이 뭘까. 다소 애매한 제목 때문에 궁금하긴 했지만 그렇게 궁금하진 않았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제목이 아주 찰떡이다. 천선란 작가의 책은 처음 읽어보는데 서문부터 마음에 드는 한 구절이 있다. ‘동식물이 주류가 되고 인간이 비주류가 되는 지구를 꿈꾼다.’ 막연하게 ‘그래 지구가 동물들에게도 살기 좋은 곳이 되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 아주 멋진 문장이다.
인터넷에서 봤던 이런 짤이 생각났다.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동물을 보는 시각이 달라져서 너무 신기하다. 예를 들면 반려동물이라든지 동물 복지라든지 예전보다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모든 걸 빨리빨리 하는 한국이라 안 좋은 점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반면 이렇게 좋은 점도 빨리 받아들이는구나. 나 말고 다른 생명체를 책임질 자신이 없어서 자녀는 물론이고 반려동물은 생각하고 있지 않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구는 인간만이 아닌 모두의 것임을 알고 있다. 특히 독일 사람들이 동물, 환경 이슈 등에 관심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덩달아 나도 관심을 조금이나마 더 가지게 된다.
천 개의 파랑에서는 다양한 주인공들이 나오는데 개인의 이야기들이 다 너무 공감이 간다. 은혜는 어렸을 적 소아마비로 인해서 걷지 못하게 되어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이 시대에는 기술이 좋아져 로봇 다리를 이식해 걸어 다닐 수 있지만 그래도 아직 비싼 가격이라 은혜도 가정 형편을 뻔히 알기에 수술받고 싶다는 말도 하지 못한다. 엄마인 보경도 소방관인 남편이 화재로 일찍 죽고 혼자 가게를 하며 버티는 상황이라 은혜에게 다리 수술을 해줄 수 없어 항상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은혜의 동생 은재. 딱히 살가운 동생은 아니지만 그래도 엄마가 시킬 때마다 언니를 돌봐준다.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말하지 않는 법을 배운 듯하다. 이처럼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지만 딱히 좋은 것도 아닌 마음의 벽이 존재하던 가족이 인간의 실수로 인간적이게 태어난 말을 타는 기수 로봇 콜리를 만나 서서히 그 벽을 허문다.
남편의 죽음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 한 보경은 어린아이처럼 궁금한 게 많은 콜리와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한국에서 가족들과 함께했던 그 순간이 가끔 너무 그립다.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가. 그래도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걸 먹거나 베이킹을 하거나 소소한 행복을 느낄 때면 그리움이 잠시 옅어진다. 몇 년을 산 독일이지만 아직도 독일의 겨울은 너무 우중충하고 정이 가질 않는다. 여름이 되면 그리움을 이길 수 있을까.
천 개의 파랑은 한국 과학 문학상 대상을 받아 심사평도 같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심사평에서 하나같이 ‘기승전결’이 좋음을 언급한다. 초반에는 여러 시점으로 전개되는 탓에 이게 뭐지 싶을 수도 있는데 전개될수록 빠져들어 깔끔한 결말까지 금방 읽게 된다. 동물, 기술, 인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들며 다음에 또 읽고 싶을 만큼 재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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