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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 사는

독일 생활 :: 이사 온 지 1년 만에 쫓겨나다

by Hyedy 2020. 2. 6.

 

Photo by  Jazmin Quaynor  on  Unsplash

 

여느 날과 다름없이 퇴근하는 길이었다. 집에 다 도착해서 우편함을 열었는데 Jessica로부터 Arne에게 편지가 와있었다. Jessica가 누구지? 평소에 Arne에게 오는 편지는 보지도 않고 뜯기도 귀찮아서 내버려 두는데 어제는 나도 모르게 그 편지를 열어봤다.

편지는 짧게 몇 줄 적혀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Jessica가 누군지 몰랐다. 짧은 독일어로 대충 아는 단어들을 보고 있었는데… ‘möchte…die wohnung zum xx.xx.xxxx…kündigen.’ 독일어를 잘 못 하는 나도 Kündigung이 뭔지는 안다. 에이 설마..하며 자세히 번역해보니 맞았다. Jessica는 우리 집주인이었고 개인적인 사정이 있으니 적힌 날짜까지 집을 빼라는 통보였다.

작년 2월 초에 들어와서 이제 딱 1년 됐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야. 편지를 읽고 바로 Arne에게 말했더니 좀 전에 집주인한테 전화가 와서 자기도 방금 알았단다. 집주인의 개인 사정으로 지금 사는 집에서 나와서 우리가 지금 사는 집에 들어올 거라고 했다. 자세한 개인 사정을 들은 후에 충분히 납득이 가긴 했지만, 아직도 어리둥절하다.

독일에선 세입자의 권리가 한국보다 훨씬 세다. 무기 계약인 경우가 많아서 계약 기간이 끝났다고 월세를 올릴 수도 없고 사전 계약서에 적혀있거나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올릴 수 있다.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함부로 나가라고 할 수도 없다. 대부분의 케이스에 독일 법은 세입자 편이다. 하지만 예외가 있는데 집주인 혹은 그 가족이 실제로 거주해야 하는 경우다. 이 경우는 세입자가 집을 빼줘야 한다. 우리의 경우가 바로 이 케이스다. 

1년만 살고 나가야 할 걸 알았다면 집을 이렇게 꾸미지도 않았을 텐데. 아예 이 집 계약하지도 않았을 텐데!!! 며칠 전에 드릴로 벽 뚫어가면서 선반도 달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아무것도 안 했지!! 누가 알았겠냐 이렇게 될 줄. 집주인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겠지

 

새로운 집을 너무 좋아했던 터라 우리는 너무 슬펐다. 이사가지 말자고 여기서 영원히 살자고 그랬는데 아쉽다. 다음 날 Arne에게 '뭐하냐, 일 잘하고 있냐' 하니 '그냥 그래..아직도 슬퍼..이사가야해서' 이런다 😞

 

이래서 사람들이 집을 사나 보다. 남의 집에 살다 보면 언젠간 나가야 할지도 모르니까. 지금 사는 집이 마음에 들어서 너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으니 새집을 바로 찾아봤다.

지금은 거실 포함해서 방이 크게 2개인데 작업실이나 잡다한 거 넣어놓을 방이 하나 더 있는 곳으로 알아봤다. 얼마 찾아보지도 않았는데 한 군데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했다. 시내까지는 지금 사는 곳이랑 비슷하게 걸리는 곳이다. 지하철도 가깝고 슈퍼도 근처에 있고 방도 3개에 완벽! Arne는 도로랑 마주 보고 있어서 시끄러울지도 모른다며 맘에 쏙 들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괜찮은 곳이어서 바로 지원했다. ‘우리는 젊은 커플인데 둘 다 직업도 있고 흡연도 안 하고 애완동물도 없고 어쩌고 저쩌고..’

 

일단 지원은 했지만, 집 찾기가 전쟁인 함부르크에서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인터뷰도 보고 우리가 마음에 들어야 살 수 있기 때문에 아직 갈 길이 멀다. 지금 사는 집을 운 좋게 첫 시도 만에 바로 계약한 것처럼 새로운 집도 순조롭게 계약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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