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도 요즘 날씨가 살짝 풀리는 듯하더니 내가 좋아하는 Bärlauch 시즌이 됐다. 한국에도 제철 나물이 있듯이 독일에도 있다. 이맘때쯤에는 딸기, 아스파라거스, 명이가 철이고 조금 지나면 체리, 납작 복숭아도 나오기 시작한다. 한국에서 명이나물이란 그냥 고깃집에서 나오는 맛있는 반찬이었는데 여기서는 제철에 미친 듯이 사 먹고 파처럼 음식 위에 뿌려먹고 쌈 싸 먹고 장아찌 담그고 난리다. 처음에는 독일에서 명이를 구할 수 있다고 사람들이 장아찌를 담그길래 나도 장아찌만 담갔는데 한 친구가 자기는 명이 생으로 먹는 게 제일 맛있다고 파스타도 해 먹고 이것저것 해 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처음으로 명이를 생으로 먹어봤는데 이게 웬걸 너무 맛있었다. 맨날 장아찌로만 먹어서 이 낯선 매끈한 비주얼이 생으로 먹으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왠지 좀 꺼려졌는데 막상 먹어보니 부추처럼 알싸한 맛이 너무 맛있다. 부추를 너무 좋아하지만 독일에선 구하기 어려워서 아쉬웠는데 명이 시즌에는 조금 덜 아쉽다.
명이철이 되면 아시안 마트가 아닌 독일 마트에 이렇게 많이 깔린다. 이날은 원래 1.29유로 정도 하던 명이를 0.99유로인가 그 정도로 세일을 하고 있어서 장아찌를 담으려고 아주 쟁여왔다. 명이 자체가 저렴해서 Bio인데도 가격이 비싸지 않다. 독일인들은 이렇게 많이 사지 않을 테지만 나는 장아찌를 담글 거고 명이는 정말 잠깐 나왔다가 얼른 들어가기 때문에 보이면 많이 사놔야 된다.
작년에도 명이 장아찌를 담겄었는데 레시피가 없길래 쉬운 레시피 없나 하고 찾아봤다. 소주를 넣는 것도 있고 비율이 복잡한 것도 있었는데 그냥 젤 간단해 보이는 설탕 1, 간장 1, 식초 1, 물 2 이 레시피대로 했다. 요리는 감이다! 대충 섞고 끓이고 식혀준다.
600그람을 샀는데 막상 뜯고 씻으니까 너무 많아서 통에 다 안 들어가려나 했는데 딱 가득 차게 잘 들어가서 2통이 나왔다. 간장을 창문가에서 30도 언저리까지 식혀줬다. 어떤 레시피는 안 식히고 뜨거운 거 그대로 넣어도 된다고 해서 작년에 뜨거운 간장을 부어봤는데 맛은 똑같았지만 명이가 다 쪼그라들어서 떼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번거롭더라도 간장을 식혀서 넣어준다. 사실 간장을 한 냄비 끓여서 충분할 줄 알았는데 부족해서 한 통밖에 못 채우고 다음날 간장을 사러 갔다;;
하루 지난 모습. 원래 실온에 며칠 보관하고 냉장고에 넣어으라고 적혀있었는데 귀찮기도 하고 아삭한 게 좋아서 바로 냉장고에 넣어버렸다.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부피가 엄청 줄어들어서 그냥 여기다가 남은 명이를 넣어도 될 뻔했는데 미리 열어보지 않고 또 다른 간장을 끓여가지고…. 장아찌 담그고 부피가 줄면 통을 합쳤는데 그래서 지금 간장이 엄청 많이 남았다. 다음에는 간장 조금만 해서 시간차를 두고 담글 테다.
왼쪽이 담근 지 이틀째 된 명이나물이고 오른쪽은 하루 지난 거다. 하루 지난 게 아삭아삭하고 알싸한 맛이 남아있어서 나는 너무 절여진 것보다 이렇게 갓 만든 게 더 입맛에 맞다.
독일 슈퍼에서 명이를 사서 이미 장아찌를 담갔지만 친구들이랑 명이 사냥도 다녀왔다. 명이가 나는 곳이 있다길래 친구들이랑 가봤는데 진짜로 산책로 옆에 이렇게 명이가 나고 있었다.
이렇게!! 엄청 많았다. 친구들이랑 자리 잡고 명이를 캤는데 우리밖에 없어가지고 되게 뭔가 민망했는데 독일인들도 하나둘씩 와서 캐서 가더라. 독일애들은 팍팍 캐서 가던데 우리는 깨끗하고 예쁜 거만 골라 따느라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
명이가 이렇게 많지만 막상 가까이 들여다보면 구멍도 있고 그래서 골라서 따느라 힘들었다. 더군다나 따기 시작할 때는 분명히 햇빛이 쨍쨍했는데 조금 지나서 비가 오기 시작했다. 한 4유로치 정도 캔 거 같은데 비가 많이 와서 접고 저녁이나 먹으러 갔다.
명이 쌈 싸 먹었다는 걸 보여주려고 올렸는데 진비빔면이 주인공 같다;; 친구 덕분에 배사매무초 처음 먹어봤는데 맛있더라. 이건 명이 사냥 이후 먹은 저녁은 아니고 다음날 저녁이다. 당일은 이미 명이를 캐느라 지쳤기 때문에 외식을 했고 다음날 명이랑 삼겹살이랑 같이 먹으려고 모였다.
이날 나는 담갔던 명이 장아찌를 들고 갔는데 친구들이 한국에서 먹었던 것보다 더 맛있다며 반응이 아주 뜨거웠다 😎 한국에서 요리도 잘 안 하던 내가 독일에 와서 명이나물 캐가지고 쌈 싸 먹고 장아찌 만들어먹고 이러고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독일에서의 즐거움이 하나둘씩 늘어나는 게 독일에 잘 적응을 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뿌듯하다. 이제 독일어만 하면 완벽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독일어 하기가 싫단 말이지 😒 이제 곧 체리 나오면 체리나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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